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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요약] 레오나르도 다빈치 :월터 아이작슨

책요약정리는책요정 2025. 3. 29. 23:27

 

1. 개요

월터 아이작슨이 2017년에 발표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념비적인 전기. 한국에서는 2019년 아르테 출판사에서 신봉아 번역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보편적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복잡다단한 삶과 경이로운 업적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특히 예술가로서뿐만 아니라 과학자, 공학자, 해부학자로서의 면모를 동등하게 조명하며, 그의 창의성이 어떻게 서로 다른 분야의 경계를 넘나드는 관찰과 호기심, 그리고 상상력의 융합을 통해 발현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아이작슨은 다빈치가 남긴 7,2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노트를 핵심 자료[2]로 삼아, 그의 내면세계와 사고 과정을 생생하게 재구성하며, 신화적인 천재의 이미지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고뇌와 열망까지 포착해낸다.

한 줄 소개: 시대를 초월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삶을 예술과 과학의 경이로운 교차점에서 재조명하며,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창의성의 근원을 탐색하는 깊이 있는 전기.

2. 저자 소개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벤저민 프랭클린 등 시대를 바꾼 혁신가들의 삶을 깊이 있게 다룬 전기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미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이다. 『타임』 지 편집장, CNN 회장, 아스펜 연구소 대표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툴레인대학교 역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의 저작들은 공통적으로 인문학과 과학기술의 교차점에서 탄생하는 창의성과 혁신의 본질을 탐구하는 데 중점을 둔다. 아이작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서 이러한 자신의 오랜 탐구 주제의 궁극적인 화신을 발견했으며, 다빈치처럼 매 순간 경이로움을 느끼고 질문을 던지는 태도가 혁신과 풍요로운 삶의 핵심임을 이 책을 통해 역설한다.

3. 책의 전체 흐름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탄생부터 사망까지의 여정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면서도, 단순한 사건 나열을 넘어 그의 다층적인 활동과 내면세계를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서두에서는 다빈치의 천재성이 신비로운 재능이 아닌, 노력과 환경을 통해 길러진 것임을 강조하며, 그의 방대한 노트를 이해의 핵심 열쇠로 제시한다.

책의 본론은 다음과 같은 흐름으로 전개된다:

  1. 출생과 성장: 사생아로서의 특별한 환경과 정규 교육의 부재가 오히려 그의 독창적인 관찰력과 경험 중시 태도를 형성하는 배경을 설명한다.
  2. 피렌체 도제 시절: 베로키오 공방에서의 수련 과정과 당시 피렌체의 예술적, 지적 분위기 속에서 초기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모습을 그린다.
  3. 밀라노 궁정 활동: 루도비코 스포르차의 후원 아래 예술가, 공학자, 공연 기획자로서 다방면으로 활동하며 명성을 쌓고, 브라만테, 파치올리 등 지식인들과 교류하며 지적 지평을 넓히는 시기를 상세히 다룬다. (예: 기마상 프로젝트, 「최후의 만찬」 구상)
  4. 과학적 탐구 심화: 해부학, 유체역학, 비행, 광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 대한 그의 깊은 탐구가 예술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 그의 노트 기록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준다. (예: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암굴의 성모」)
  5. 피렌체 귀환과 경쟁: 다시 피렌체로 돌아와 미켈란젤로와의 유명한 경쟁(앙기아리 전투 벽화)을 벌이고, 예술적 정점에 이르는 과정을 묘사한다. (예: 「모나리자」 착수)
  6. 만년의 활동과 유산: 로마와 프랑스에서의 마지막 후원자들과의 관계, 지속적인 과학 연구와 예술 활동(특히 미완성 작품에 대한 집착), 그리고 프란체스코 멜치에게 남긴 유산을 통해 그의 삶을 마무리한다.

결론적으로 아이작슨은 레오나르도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동력, 즉 예술과 과학을 넘나드는 끝없는 호기심과 관찰력, 그리고 상상력의 힘을 강조하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창의성의 원천임을 제시한다.

 

4. 상세 요약

4.1. 서문 및 접근 방식

아이작슨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단순한 천재로 규정하는 것을 경계하며 서문을 시작한다. 그는 레오나르도의 비범함이 초인적인 것이 아니라, 치열한 호기심, 면밀한 관찰력, 그리고 다양한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연결하는 능력에서 비롯된 '인간적인' 성취임을 강조한다. 레오나르도가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그의 천재성은 오히려 경험과 실험을 통해 스스로 학습하고 발전시킨 능력에 기반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핵심 자료는 레오나르도가 남긴 7,200여 페이지의 노트이며, 아이작슨은 이 노트를 통해 그의 복잡한 사고 과정과 창의성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한다. 서문에서부터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허문 그의 능력이 혁신의 열쇠임을 명확히 하며, 그의 대표작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을 그 상징으로 제시한다. 또한, 레오나르도의 삶을 통해 우리 자신과 아이들이 어떻게 창의성을 키울 수 있는지에 대한 교훈을 얻고자 하는 집필 의도를 밝힌다.

4.2. 유년기와 도제 시절: 관찰과 경험의 씨앗

1452년, 레오나르도는 공증인 세르 피에로와 시골 처녀 카테리나 사이에서 사생아로 태어난다. 이 '불리한' 출생은 역설적으로 그에게 행운이 되었다. 정식 교육과 가업 계승의 의무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자신의 관심사를 추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빈치의 자연 속에서 보낸 유년기는 그의 예리한 관찰력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을 키우는 토양이 되었다. 1460년대 중반 피렌체로 이주한 그는 당대 최고의 공방 중 하나인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의 작업실에서 도제 생활을 시작한다. 이곳은 회화, 조각뿐 아니라 금속 세공, 기계 장치 등 다양한 기술과 예술이 공존하는 환경이었고, 레오나르도는 이곳에서 엄격한 훈련을 받으며 해부학적 지식, 빛과 그림자를 다루는 키아로스쿠로 기법, 그리고 윤곽선을 부드럽게 처리하는 스푸마토 기법의 기초를 다진다. 베로키오의 「다비드」 청동상의 모델이 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 「그리스도의 세례」에 그린 천사는 그의 초기 재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다. 피렌체의 지적 분위기, 특히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의 원근법 및 건축 이론은 젊은 레오나르도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 시기 겪은 남색 혐의 고발 사건은 그에게 사회적 낙인과 내면적 고독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4.3. 독립과 초기 활동: 천재성의 발현과 좌절

1477년경 스승 베로키오로부터 독립한 레오나르도는 자신만의 작업실을 열지만, 예술가로서의 경력 초반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작품을 제때 완성하지 못하는 악명 높은 습관 때문에 상업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밀라노로 떠나기 전까지 그가 공식적으로 의뢰받아 시작한 주요 작품은 「동방박사의 경배」와 「황야의 성 히에로니무스」 두 점뿐이었고, 둘 다 미완성으로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미완성작들은 그의 혁신적인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가 된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복잡한 인물 군상을 통해 격렬한 감정의 파동을 표현하려는 야심찬 시도였으며, 원근법과 인물 배치를 실험하는 과정이 준비 그림에 생생하게 남아있다. 「황야의 성 히에로니무스」는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인간의 깊은 고뇌와 영성을 탐구한 초기 걸작으로, 이후 수십 년에 걸쳐 수정될 정도로 그에게 중요한 작품이었다. 이 시기 레오나르도는 '마음의 움직임(moti mentali)'을 포착하여 인물의 내면세계를 드러내는 데 집중했으며, 이는 그의 예술과 과학 탐구 모두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가 되었다. 하지만 작품 완성의 어려움과 경쟁자들의 성공 속에서 그는 깊은 좌절감과 자기 회의에 시달렸고, 이는 그의 노트에 남겨진 고뇌의 기록들을 통해 엿볼 수 있다.

4.4. 밀라노 시절: 예술, 과학, 궁정 생활의 융합

1482년, 레오나르도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밀라노로 이주한다. 그는 밀라노의 통치자 루도비코 스포르차에게 자신을 군사 공학자이자 건축가로 소개하는 인상적인 편지를 보낸다. 초기에는 그의 공학적 야망보다는 예술적 재능이 먼저 인정받아, 궁정의 화려한 축제와 야외극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역할을 주로 맡는다. 이 활동은 그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무대 장치와 기계 설계를 통해 예술과 기술을 결합하는 능력을 키우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밀라노 궁정에서 그는 건축가 도나토 브라만테, 수학자 루카 파치올리 등 당대의 뛰어난 지식인들과 활발히 교류하며 지적 성장을 이룬다. 특히 파치올리와의 교류는 그의 기하학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고, 이는 인체와 우주의 비례를 탐구한 걸작 「비트루비우스적 인간」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또한 루도비코의 아버지 프란체스코 스포르차를 위한 거대한 기마상 제작을 의뢰받아 말 해부학 연구에 몰두하고 혁신적인 주조 기술을 개발하지만, 정치적 상황 변화로 프로젝트는 안타깝게 무산된다. 개인적인 삶에서는 어린 조수 살라이를 받아들여 복잡하고 애정 어린 관계를 맺는다. 밀라노에서의 17년은 레오나르도가 예술가, 과학자, 발명가로서 다방면의 재능을 꽃피우고 통합시킨 결정적인 시기였다.

4.5. 과학과 예술의 심화: 우주와 인간 탐구

레오나르도의 창의성은 예술과 과학의 끊임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심화되었다. 그는 초기에는 예술적 필요에 의해 과학을 탐구했지만, 점차 지식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으로 연구의 범위를 확장했다. 그는 '경험의 제자'임을 자처하며 관찰과 실험을 중시했지만, 밀라노 시절 이후로는 책을 통한 학습과 이론의 중요성도 인식하며 균형을 찾아갔다.

  • 해부학: 두 차례(1480년대 후반, 1508-1513)에 걸쳐 30구가 넘는 시신을 해부하며 인체 구조에 대한 혁신적인 이해를 보여주었다. 그는 두개골, 근육, 신경, 혈관, 장기 등을 전례 없는 정확성과 예술성으로 묘사했다. 특히 심장 연구에서 네 개의 심방/심실 구조를 확인하고, 혈류의 소용돌이가 대동맥 판막을 닫는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는 등 시대를 초월한 발견을 이루었다. 자궁 속 태아 그림은 과학적 탐구와 영적 경외감이 결합된 그의 해부학 연구의 정점을 보여준다.
  • 비행 연구: 새의 비행 원리를 면밀히 관찰하고 공기역학적 원리를 탐구하여 유인 비행 기계를 설계했다. 비록 실제 비행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연구는 날개 구조, 공기 저항, 양력 발생 등에 대한 선구적인 통찰을 담고 있다.
  • 기계학 및 공학: 기계 부품의 작동 원리를 분석하고 분해도를 활용하여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탁월했다. 마찰력 연구, 베어링 고안, 다양한 자동화 기계 설계 등은 그의 공학적 독창성을 보여준다.
  • 수력학 및 지질학: 물의 움직임에 매료되어 유체 역학을 깊이 연구했다(코덱스 레스터). 강의 침식 작용, 골짜기 형성, 화석의 생성 원리(대홍수 설화 반박) 등을 탐구하며 지구를 역동적인 유기체로 이해했다. 하늘이 파란 이유에 대한 그의 설명은 빛의 산란 원리에 근접했다.
  • 광학 및 원근법: 빛과 그림자, 색채에 대한 깊은 이해는 그의 회화 기법(키아로스쿠로, 스푸마토)의 근간이 되었다. 그는 선 원근법뿐 아니라, 색채와 선명도의 변화를 통해 깊이감을 표현하는 대기 원근법과 소실 원근법을 체계화하고 예술에 적용했다.

이러한 광범위한 과학적 탐구는 레오나르도가 자연의 패턴과 법칙을 이해하고, 이를 예술 작품 속에 녹여내어 전례 없는 깊이와 사실성을 부여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4.6. 피렌체 귀환과 경쟁: 예술적 정점과 라이벌

1499년 프랑스의 밀라노 침공 이후, 레오나르도는 1500년경 고향 피렌체로 돌아온다. 이미 거장의 반열에 오른 그는 산티시마안눈치아타성당에 머물며 대중의 큰 관심을 받는다. 이 시기 그는 자신의 예술적 역량을 집대성하는 중요한 작품들을 구상하고 시작한다. 특히 1503년경 착수한 「모나리자」는 이후 16년 동안 그의 곁을 떠나지 않으며 계속해서 수정될 운명이었다. 또한, 성모와 성 안나, 아기 예수를 주제로 한 복잡하고 감성적인 구도의 「성 안나와 성 모자」 작업에도 착수한다. 이 시기 그는 체사레 보르자의 군사 기술자로 잠시 활동하며 실용적인 공학 기술과 지도 제작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피렌체 귀환의 정점은 1503년 시뇨리아 궁전 대회의장의 벽화 제작 의뢰였다. 그는 앙기아리 전투의 격렬한 순간을 포착하여 전쟁의 역동성과 잔혹함을 담아내려 했고, 수많은 혁신적인 준비 그림을 남겼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는 곧이어 맞은편 벽에 카시나 전투를 그리게 된 젊은 거장, 미켈란젤로와의 치열한 예술적 경쟁 무대가 된다. 성격과 예술관이 극명하게 달랐던 두 사람은 서로를 의식하며 각자의 역작을 구상했다. 미켈란젤로는 남성 누드에 집중한 조각적인 표현을 선호한 반면, 레오나르도는 스푸마토와 키아로스쿠로를 활용한 감정적이고 역동적인 묘사를 추구했다. 이들의 밑그림은 당대 예술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나, 레오나르도는 유화 물감 실험의 실패와 경쟁에 대한 부담 등으로, 미켈란젤로는 교황의 부름으로 로마로 떠나면서 두 벽화 모두 미완성으로 남게 된다. 이 사건은 레오나르도의 예술적 야망과 기술적 한계, 그리고 경쟁 관계 속에서의 고뇌를 보여주는 동시에, 르네상스 예술의 중요한 전환점을 마련했다.

4.7. 만년과 프랑스 시절: 성찰과 마지막 불꽃

1506년, 레오나르도는 미완성 벽화와 복잡한 피렌체를 뒤로하고 다시 밀라노로 향한다. 프랑스 총독 샤를 당부아즈의 후원 아래, 그는 이전보다 안정적인 환경에서 활동하며 젊은 귀족 프란체스코 멜치를 제자이자 양자로 맞아들여 깊은 관계를 맺는다. 이 시기 그는 해부학 연구의 두 번째 라운드를 시작하고, 수력학 및 지질학 연구(코덱스 레스터)를 심화하는 등 과학 탐구에 더욱 몰두한다. 아버지의 사망(1504) 후 벌어진 이복형제들과의 유산 분쟁으로 잠시 피렌체를 방문하기도 하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밀라노와 프랑스 후원자들에게 기울어 있었다.

1513년, 정치적 격변 속에 그는 로마로 이주하여 메디치 가문 출신의 교황 레오 10세와 그의 동생 줄리아노의 후원을 받는다. 로마에서는 주로 공학 프로젝트(폰티노 습지 배수, 거울 제작 등)에 관여하며 새로운 그림 작업은 거의 하지 않고, 기존의 걸작들(「모나리자」, 「성 안나」, 「성 요한」)을 계속해서 수정하고 다듬는 데 집중한다. 1516년, 후원자 줄리아노 데메디치가 사망하자 그는 프랑스의 젊은 국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을 받아들여 프랑스로 이주한다.

프랑수아 1세는 레오나르도에게 클로 뤼세 성과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하며 절대적인 존경심을 표했다. 레오나르도는 마침내 간섭 없이 자신의 관심사를 자유롭게 추구할 수 있는 이상적인 후원자를 만난 것이다. 그는 왕을 위해 야외극을 기획하고, 로모랑탱 신도시 설계를 구상하는 등 마지막 열정을 불태웠다. 그러나 건강 악화로 많은 계획을 실현하지는 못했다. 생애 마지막 몇 년 동안 그는 격렬한 자연의 힘과 인간의 실존을 담은 '대홍수' 연작 그림에 몰두하며 깊은 내면적 성찰을 보여준다. 1519년 5월 2일, 예순일곱의 나이로 프랑수아 1세의 궁정과 가까운 클로 뤼세에서 사망한다. 그의 방대한 노트와 미완성 작품들은 충실한 제자 프란체스코 멜치에게 상속되어 후대에 전해지게 된다.

 

5. 핵심 개념 및 아이디어

  • 예술과 과학의 융합: 레오나르도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으로, 그는 예술과 과학을 별개의 분야가 아닌 상호 보완적인 관계로 인식했다. 해부학, 광학, 식물학, 지질학 등 과학적 탐구를 통해 얻은 지식은 그의 그림에 사실성과 깊이를 더했고(예: 「모나리자」의 미소와 광학/해부학 지식, 「암굴의 성모」의 지질학/식물학적 정확성), 반대로 예술적 감수성과 시각화 능력은 그의 과학 연구를 독창적인 방향으로 이끌었다(예: 해부도, 기계 설계도).
  • 관찰과 상상력의 조화: 레오나르도는 경험과 직접 관찰을 지식의 근원으로 삼았지만('경험의 제자'), 동시에 현실 너머를 상상하는 능력을 중시했다. 그는 벽의 얼룩이나 구름 속에서 형태를 발견하고 이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발전시켰으며, 실제 동물의 부분을 조합하여 상상 속 괴물을 창조하기도 했다. 이러한 관찰과 상상력의 결합은 그의 예술과 공학 양쪽에서 혁신의 원동력이 되었다.
  • 인간적인 천재성: 아이작슨은 레오나르도의 천재성이 초인적인 능력이 아니라, 끊임없는 호기심, 노력, 시행착오를 통해 길러진 인간적인 특성임을 강조한다. 그의 수많은 미완성 작품과 프로젝트는 완벽주의와 주의 산만함이라는 인간적 약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끊임없이 배우고 개선하려는 그의 열망을 드러낸다. 이는 우리도 그의 방식을 배우고 따를 수 있다는 희망을 준다.
  • 노트북의 역할: 레오나르도가 남긴 방대한 노트는 그의 생각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다. 이 노트는 단순한 기록을 넘어, 아이디어를 시각화하고, 실험을 계획하고,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연결하는 '사고의 실험실' 역할을 했다. 무작위적인 기록과 스케치의 병치는 그의 자유로운 연상과 통합적 사고 과정을 보여준다.
  • 소우주와 대우주: 고대부터 내려온 개념으로, 인간(소우주)과 우주 또는 지구(대우주) 사이에 구조적, 기능적 유사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레오나르도는 인체의 혈관과 강의 흐름, 뼈와 암석 등을 비교하며 이 유비를 예술과 과학 연구의 중요한 틀로 삼았다(예: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모나리자」의 배경과 인물의 조화). 그러나 관찰과 실험을 통해 비유의 한계를 인식하고 수정하기도 했다.
  • 움직임과 감정 표현(Moti mentali): 레오나르도는 단순히 외형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인물의 내면 감정('영혼의 움직임')을 신체 동작과 표정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는 「최후의 만찬」에서 각 사도들의 극적인 반응이나 「모나리자」의 미묘한 미소와 시선 처리에서 잘 드러난다. 이를 위해 그는 해부학 연구를 통해 근육과 신경의 작용을 깊이 이해하려 노력했다.

 

6. 평가 및 반응

월터 아이작슨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출간 이후 비평가와 일반 독자 모두로부터 폭넓은 찬사를 받으며 현대의 대표적인 다빈치 전기로 자리매김했다.

  • 긍정적 평가:
    • 종합성과 깊이: 레오나르도의 예술, 과학, 공학, 개인사 등 다방면에 걸친 활동을 방대한 자료(특히 노트)를 바탕으로 깊이 있게 탐구하고 유기적으로 연결한 점이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힌다. 예술과 과학의 융합이라는 시각은 그의 창의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제공했다는 평가다.
    • 인간적인 접근: 신화 속 천재가 아닌, 호기심 많고, 실수도 하며, 때로는 좌절하는 인간 레오나르도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냄으로써 독자들이 감정적으로 몰입하고 공감할 수 있게 했다. 그의 '학습 가능한' 천재성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평이다.
    • 탁월한 가독성: 아이작슨 특유의 명료하고 흡입력 있는 문체 덕분에, 7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과 전문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힌다는 반응이 많다. 복잡한 과학적 개념이나 예술사적 맥락을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 시의적절한 통찰: 분야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대 사회에, 다빈치의 통합적 사고와 창의성에서 배울 점이 많다는 메시지가 시의적절하고 강력한 울림을 준다는 평가다. 마틴 켐프 등 세계적인 레오나르도 전문가들의 자문을[3] 거쳐 학문적 신뢰성을 확보한 점도 높이 평가된다.
  • 비판적 시각 및 논쟁점:
    • 새로운 발견의 부재: 일부 학계에서는 이 책이 획기적인 새로운 발견이나 해석을 제시하기보다는, 기존 연구 성과들을 대중적으로 종합하고 재구성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추었다는 비판적 시각도 존재한다.
    • 분량과 상세함: 매우 상세하고 포괄적이지만, 그 방대한 분량이 일부 독자에게는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특정 주제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때로는 전체적인 흐름을 더디게 만든다는 의견도 있다.
    • 해석의 여지: 저자의 특정 심리 분석이나 일부 사건에 대한 해석은 다른 전문가들의 견해와 다를 수 있으며, 논쟁의 여지를 남긴다.

종합적으로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대한 가장 권위 있고 접근하기 쉬운 최신 전기 중 하나로 널리 인정받고 있다. 그의 삶과 시대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시대를 초월하는 창의성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강력히 추천되는 작품이다.

 

7. 여담 및 트리비아

  • 월터 아이작슨은 레오나르도의 노트를 직접 연구하기 위해 전 세계 주요 도서관과 박물관을 순회하며 원본을 확인하는 열정을 보였다. 이는 레오나르도가 강조한 "원천으로 직접 가라"는 원칙을 따른 것이었다.
  • 아이작슨은 이 책을 쓰면서 레오나르도의 삶의 방식에 깊이 감화되어, 자신도 일상에서 더 깊이 관찰하고 더 많은 질문을 던지려 노력했다고 밝혔다. 그는 레오나르도의 관점을 배우는 것이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한다.
  • 이 책의 집필 과정에는 마틴 켐프, 줄리아나 바로네 등 세계 최고 수준의 레오나르도 전문가들이 광범위하게 참여하여 내용의 정확성과 깊이를 더했다. 레오나르도의 노트 '코덱스 레스터'를 소장한 빌 게이츠와 그의 큐레이터 역시 관련 내용 검토에 도움을 주었다.
  •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딱따구리의 혀'에 대한 설명은, 레오나르도 노트에 적힌 기이한 메모("딱따구리의 혀를 묘사하라")에 대한 답변이다. 이는 레오나르도의 끝없는, 때로는 기이하기까지 한 호기심의 본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8. 관련 문서

  • 레오나르도 다빈치
  • 월터 아이작슨
  • 모나리자
  • 최후의 만찬
  •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 암굴의 성모
  • 르네상스
  •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루도비코 스포르차
  • 체사레 보르자
  • 니콜로 마키아벨리
  • 프랑수아 1세
  • 스티브 잡스 (책)
  • 아인슈타인 삶과 우주

 

9. 각주

[1] 레오나르도가 1482년경 밀라노 공작 루도비코 스포르차에게 보낸 구직 편지의 일부. 그는 10개 문단에 걸쳐 자신의 군사 및 토목 공학 기술을 열거한 뒤, 마지막 11번째 문단에서 "그림도 마찬가지로, 저는 뭐든 다 그릴 수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2] 레오나르도는 평생에 걸쳐 과학, 예술, 공학, 해부학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생각과 관찰, 스케치를 방대한 양의 노트에 기록했다. 현재 약 7,200페이지 분량이 남아 있으며, 이는 그의 다면적인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창으로 여겨진다. 아이작슨은 이 노트를 책의 핵심 뼈대로 삼았다.
[3] 아이작슨은 책의 '감사의 글'에서 마틴 켐프(옥스퍼드대 명예교수, 레오나르도 연구 최고 권위자), 줄리아나 바로네(런던대 버베크 칼리지, 레오나르도 전문가), 마르코 치안키(피렌체 국립미술원 교수) 등 수많은 학자, 큐레이터, 기관에 감사를 표하며 그들의 도움을 상세히 언급했다.